심윤의 신작<숲속의 소파>는 올해부터 시작한 <심시티 시리즈>중 하나다. 도시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총망라된 가상의 도시, 심시티는 무한한 에너지와 가능성, 판타지를 갖고 있지만 범죄와 빈부격차, 환경오염과 같은 고질적 문제를 양산한다. 재미있는 것은 도시를 건설하는 게임 속의 유저(user)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 즉 ‘심’의 행복을 중요시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숲속의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현대인에게는 꿈같은 장면이다. 그러나 화면 속 남자의 모습은 온전한 휴식이라 하기에 어딘가 과장되어 연출된 이미지에 가깝다. 현대인에게 행복은 기분 좋은 감정이기보다 행복해 보이는 이미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미지 사랑은 대단하다. 여기 개별성(얼굴)은 사라진 채 스타일만 남아있다.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정민

무게를 그리다, 심윤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김나현

심윤의 작업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몇 가지 단서가 있다. 가장 먼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작품의 크기와 모노톤으로 절제된 색, 흐릿한 형상 그리고 반어적 제목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작업 방식에 단서라는 의미를 붙인 이유는 이 단서를 따라 자연스럽게 작업에 집중하다보면 의도적으로 겹쳐진 레이어 속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From A to B》의 전시에서 심윤의 공간은 제일 위층인 3층에 자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늘로 치솟는 세모꼴의 천장과 보통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크기(259×450cm)로 통일된 회화 다섯 점을 마주하게 된다. 개별 작품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세모꼴의 천장과 가로형 회화가 극적으로 다가온다. 각각의 거대 화면들은 서로가 주고받는 모호한 긴장감과 무게감으로 전시 공간을 가득 매우고, 관람객은 그 안에서 충분히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품의 거대한 크기도 크기지만, 모노톤으로 절제된 색 덕분에 무게감은 한층 더 무겁게 그리고 진중하게 다가온다. 모든 작품에는 철저하게 색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형상에만 집중하도록 제안된 방식이다. 하지만 그 곳에 위치한 흐릿한 이미지, 그래서 그 이미지를 좀 더 정확하게 보고자하는 충동, 그 충동으로 발걸음은 화면으로부터 차츰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좀 더 멀리서 응시하면 흐릿함 너머에 사실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의 잔상들이 어른거린다. 입구에서부터 총을 잡은 누군가의 뒷모습, 윗부분이 그려지진 않았지만 낙하산으로 유추되는 어느 것에 의지한 채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장면, 겹겹이 쌓여진 나체의 사람들, 눈과 입이 교묘하게 가려진 풀 숲 사이의 군인, 이쯤되면 화면의 인물이 입은 의복과 분위기로 그려진 누군가는 ‘군인’일까 싶고, 나체는 ‘시체’ 인가? 짐작되며, 마지막 시선의 커피잔을 든 사람은 고위 간부로 추정 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짐작과 추정인 작품의 내적 의미를 확인하고자 읽어본 명제표에는 기타 <Guitar guitar>, 세탁물 <Laundry>, 바리게이트 <Barricade>, 부드러운 촉감 <Soft touch>, 커피맨 <Coffee man>과 같이 예상을 빗겨나간 전혀 다른 제목들이 적혀있다. 갸웃거리며 한 층 아래에 위치한 에스키스 공간으로 넘어가면 누가봐도 전쟁의 극적 장면의 일부가 희극적으로 편집된 영상<I Saw you dancing>을 마지막으로 전시가 끝난다.

근래 심윤이 주목하는 주제는 ‘전쟁’이다. 그리고 주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붙여진 제목들, 이 상관관계 없어 보이는 주제와 제목의 거리감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하는 동시대의 단면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내전과 전쟁을 감행하는 국가들이 있고, 우리나라 역시 휴전 상태의 분단국가이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전쟁은 멀게만 느껴진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라듯 작가는 가벼운 유희적 제목들을 작품에 붙임으로써 전쟁의 이미지가 지닌 무게를 가중시킨다. 결국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전쟁은 실재가 아닌 허구 즉, 구전, 사진,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습득한 간접 경험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접 경험으론 전쟁에 대한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판단과 공감이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참혹한 전쟁의 실태를 직시할 수 없을뿐더러 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실정이지만,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실재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드러낸다. 또한 실재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와 허구가 실재로 대체되고 있는지 적신호를 보낸다. 거시적으로는 삶의 주변부에서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대상들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가벼운 시선과 판단의 잣대를 드리우는지를 반어적으로 지적한다.

심윤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스치는 동시대의 이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제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본다.